첫인상이 좋은 작품, 드라마 [비밀의 숲] (2017)

촬영기술과 편집기술의 최대치를 보여주듯 긴박감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던 1화의 용의자 강진섭 (배우 윤경호) 추격 장면은 드라마 [비밀의 숲] (2017, 극본 이수연, 연출 안길호) 제작 소식을 들을 때부터 높은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던 시청자의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종일 뛰고 구르며 연기했을 배우들과 추격과정에 삽입된 장애물과 난이도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려낸 연출의 힘이 더해졌기에 가능했을 거다. 
16시간짜리 작품을 이제 겨우 2 시간 감상했을 뿐이지만, 내게 작품 [비밀의 숲]은 디테일로 승부했던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현장 취재와 인터뷰로 직접 보고 들었기에 가능했을 플롯, 공간, 소품에서 보여주는 묘사와 설명이 다른 어느 작품보다 사실에 근거하고 구체적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토대로 전개되는  길지 않은 대화가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성격과 전체 이야기의 틀을 암시하는 역할까지 해냈다. 
황시목 검사 (배우 조승우)가 사건이 일어난 현장으로 돌아가서 범죄를 시연해 보며 범행시간을 검증해 보는 장면 역시 뛰어난 구성이었다. 조승우 배우의 뮤지컬 무대에서 단련됐을 단정한 동작연기가 돋보였고, 논리적으로 세분하여 생명력이 느껴지는 현장을 그려낸 작가의 구성이 좋았다. 
텃세에도 주눅들지 않는 강단있는 형사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는 배두나 (한여진 경위 역) 배우가 살해된 피해자의 유족을 문상하던 장면 역시 짧은 컷들이지만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표정과 몸짓을 통해 잘 묘사되어 최소한의 대사로도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 들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정부의 검찰 개혁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시민으로서 개혁 과정에서 늘 경험하게 되는 충돌과 저항을 예상한다. 특히, 과도하게 집중된 공권력을 남용했던 검찰의 폐단을 제거하는 개혁과정에서 검찰권력 편에 서서 보도기사를 쏟아낼 언론들의 횡포를 우려한다. 

사전제작을 했기에 이미 작가와 연출의 손을 떠난 작품이지만, 남은 14시간 이야기 안에 본분을 다하는 검사들의 모습과 본분이나 직업윤리를 저…

사대주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드라마 작가들과 기자들

컴퓨터는 순우리말이 아니고 영어에서 차용한 말이니 이제부터 '셈틀' 또는 한자로 구성된 한국어 '전산기'로 부르자고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기자들과 드라마 작가들이 보도영상과 극본에서 '사실'이라는 우리말 대신 "팩트"라고 하고, 법률 드라마에서는 '회사'를 "펌"이라고 하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도록 정체불명의 단어 "팩트"를 사례로 사용했습니다
요즘 드라마나 보도영상에서 배우들이나 기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팩트"는 영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영어사용자들에게는 PACT 혹은 PECT로 인지된다. 드라마 작가들과 기자들이 전달하려던 의미는 FACT지만, 한글로 이 단어를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국어에는 영어 자음 F처럼 발음되는 자음이 없기 때문이다. 
PACT는 양자간 공식적 합의를 의미하고, PECT는 두문자어 (단어 제일 첫머리의 한글자씩을 따서 만든 단어) 즉, 낱말의 머리글자를 모아서 만든 준말이다.  Personal Email Company Time, 업무시간에 개인적인 용도의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 행위를 의미한다. 의학에서는 가슴 근육을 줄여 말할 때 PECT를 쓰는 경우가 있다. 사실을 의미하는 FACT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다. 


한국어에도 FACT와 같은 의미인 '사실'이라는 낱말이 존재한다. 어감도 좋고 쉽고 영유아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우리말이다. 
그럼에도 드라마 작가들과 기자들이 '사실'이라는 우리말 사용을 기피하고 "팩트"라는 단어를 애용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지 아래 질문들을 근거로 검토해 봤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수가 외국인들이거나, 영어권 제작진과 공동제작을 하기 때문에 배려하는 차원인가?드라마 배경이 외국이고 주인공들이 외국인인가?제작진이 생사를 걸만큼 추이에 민감한 시…

드라마 [오만과 편견] (2014~2015)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불량식품 등 4대 거악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로 인천지검에 민생안정팀이 꾸려졌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 (극본 이현주, 연출 김진민, 2014~2015) 안에서.
김지우 작가의 [부활] (2005)과 [마왕] (2007), 유현미 작가의 [신의 저울] (2008)과 함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 이현주 작가의 [오만과 편견]은, 법무부 내의 한 민생안정팀이 법권력을 보호하는 유리천정에 실같은 금과 틈을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권력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로 팀을 이끌었던 문희만 (배우 최민수) 부장검사가 끝내 살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들의 뒤끝 긴 찌질함을 여실히 보여주어 관객들에게 적지않은 충격과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더욱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거대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 '박만근'은 특정인 한 사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 권력을 거머쥔 박만근같은 인간들을 건드린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가능할 일쯤으로 치부되는 현실, 한 국가의 힘의 상징인 법무부조차도 한 '박만근(쎈 놈)'이 저지른 잘못을 벌하려면 먼저 다른 박만근 (쎈 놈)'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저들만의 규칙, 그리고 '검사들의 죄는 죄가 아니고 대의를 위한 것이고 검찰의 흠은 흠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일이다'는 괴변까지, [오만과 편견]은 우리 사회가 아직은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서민들의 믿음이 착각이고 저들이 심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다.
취업비리를 고소한 취업준비생이던 극중인물 고영민이 자신을 철없고 한심한 취준생 정도로 취급했던 검사 이장원 (배우 최우식)에게 말한다. "꿈 따위는 접고 그냥 평생 먹고 살 일이 겁나서 청춘이고 연애고 다 묻어둔 채 죽도록 공기업 준비했는데, 난 떨어지고 주상훈 (낙하산 입사) 같은 애가 되니까 내가 돌아버리겠더라고요. 허탈하고 막막하고 빡치고. 전 3 년째에요. 앞으로 …

드라마 [굿와이프] (2016)

창작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단순히 무에서 유를 생성하는 것으로 정의하기에는 부족한, 무엇 혹은 무엇들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창작물이 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곡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창작의 고통이 작가들의 피를 말리는 정도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작가가 한 작품(창작물)을 완성시키는 것을 감히 인간이 아이를 잉태하는 행위에 비유하기도 한다. 
창작에 동반되는 고통과 수고를 이해하기에 결과적 실패물을 포함한 모든 창작물에 기여된 시간∙땀∙노력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을 바쳐서 창의적인 제작을 하는 인물들을 존경한다. 같은 이유로, 힘든 창작을 포기하고 베끼기와 짜깁기로 재생산하여 편익을 추구하는 자들을 경멸하게 되기도 한다. 
드라마 [굿와이프]의 원작인 미국 드라마 [The Good Wife]는 한국어 자막을 곁들여 이미 한국에서 오랫동안 방영되었고 수차례 재방송됐던 "인기 미드"였다. 그런데 한국판 [굿와이프] 제작진에게는 그 무수한 재방송도 부족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원작의 극본을 그대로 번역해서 한국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한국판을 다시 만들고 있는 거 보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반드시 보면 좋을 어떤 가치있는 주제나 작품성을 원작 [The Good Wife]에서 보았던 게 틀림없다. 
하지만, 미드 [The Good Wife]의 시즌1부터 시즌7까지 전체 플롯 전개와 각 에피소드에서 다룬 소재에는 곱씹을 만한 중요한 메시지나 가치있는 공론을 끌어낼 주제는 없었다. 시즌별 약 서너 개의 에피소드에 민감한 사회현안이나 정치현안을 살짝 담는 듯 했지만, 부패한 권력이나 사회부조리에 연루된 기득권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큼의 깊이는 찾을 수 없었던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이 점은 다른 "인기 미드"들과 충실하게 맥을 같이 한다. 
미국 드라마 산업에서 [The Good Wife] 제작 사단이 가진 강력한 힘 덕분에 시즌7까지 버티고 종영됐지만, 이미 시즌3,4가 방영될 때부터 창작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평…

드라마 [송곳] (2015), 종영한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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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비정규직 고용 확대 관련 사안들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취재하고 공부해 오면서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고용이 확대되고 있는데 양국의 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을 다소 해소시켜준 드라마가 [송곳] (최규석 원작, 김석윤 연출, 2015년 10월 방송)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 [송곳]을 시청하는 12시간 내내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느껴져 한숨을 내쉬며 같이 아파했던 것 같다.




드라마 [송곳]에서 묘사한 2003년 당시 비정규직, 특히 파견업체를 통해 고용된 임시직 노동자들의 고단하고 빠듯한 삶은 캐나다에 사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캐나다에도 파견업체와 연결된 임시직에서 일하는 많은 저임금 노동자 (건설노동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업종이 사무직으로 분류됨)들이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1,427달러 (온타리오주 최저임금 기준, 캐나다 달러)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현재 온타리오주의 최저임금은 1시간에 11달러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시의 중심에 위치한 원룸 한 달 월세는 대략 1,100달러가 넘고, 시내를 조금 벗어나면 900달러 정도의 원룸 월세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 원룸 아파트를 빌린 임시직 노동자가 월수입에서 월세를 지불하고 나면, 생활비 몫으로 적게는 300달러에서 최대 500달러가 남는다. 식비, 전화비, 교통비, 전기요금을 지불하기도 모자라는 돈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교통비 (103.25달러: 현재 오타와 시내의 1개월 버스 패스 구입비)와 전화비 (90.40달러: 스마트폰으로 전화와 최소량의 데이터 서비스 이용료) 몫으로 200달러가 지불되어야 하고,  전기요금 (30~50달러 정도)을 포함하면 매달 250달러는 반드시 지불되어야 하는 예산이다.

시간 절약을 위해 시내에 원룸 아파트를 구한 노동자의 경우는 식비로 100달러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아야 빚지지 않고 생계 …

드라마 [시그널]의 한 장면이 눈물나도록 고맙다

드라마 [시그널] (극본 김은희, 연출 김원석, 2016)이 많은 화제와 인기 속에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종영됐다.

세상에 쏟아진 드라마 9할은 어수선하고 비논리적인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을 당황시키는 요즘, [시그널]의 플롯 구성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한국 드라마 산업 현장에서는 이룰 수 없는 요소인 개연성을 놓치지 않는 기적을 만들었다.

과거에서 무전이 온다는 설정은 허구적이지만 창의적이었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장기미제 사건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범죄수사에 필요한 요소, 수사를 어렵게 만들었던 요소, 세기의 사건들이 장기미제로 남게 된 이유 분석, 관련 인물들의 실수와 부도덕에 대한 반성, 경찰 공무원인 주인공들이 보여준 윤리적 책임과 사리사욕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약한 인간의 모습, 부끄럼이나 죄의식조차 없어 보이던 무책임한 공권력의 모습 등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오픈엔딩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 예상과 달리 긍정적이다. 드라마가 호평을 받아왔던 덕분이지 싶다.  이미 많은 리뷰가 쏟아져 나온 작품에 대해 굳이 글을 쓰기로 했던 이유는 [시그널]의 최종회의 한 장면이 인상적이어서다.

이재한 형사 (배우 조진웅)가 피해자의 부모가 사는 박해영 경위 (배우 이제훈)의 집을 찾아가 죽은 아들이 무죄였음을 알려주고 공권력이 저지른 실수와 무능한 업무처리의 결과로 살해 당했던 아들의 죽음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하던 장면. 

이재한 형사가 존재하던 과거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공권력의 실수와 무책임한 일처리로 적지 않은 시민들이 곤경에 처하고 다치고 생명을 잃기도 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295명이 익사했고 9명이 실종된 상태다. 배가 침몰된 후 스스로 살아나온 승객들 외에 해경으로부터 구조된 시민은 없었다.  세월호 참사 후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됐고 사고 이전과 당시 상황 및 사후처리 과정을 조각조각 담은 편집영상들 속에서 퍼즐을 맞추면서 시민들이 가장 먼저 깨달았던 점은,  304 명의 희생자 전원을…